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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 조치’의 의미(서울고등법원 2025.11.19 선고 2024누65869 판결)

  • 작성자 : 노무법인 두레
  • 작성일 : 2026.08.08
  • 조회수 : 173

[판결 요지]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라 한다) 제14조 제4항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후, 피해 근로자의 요청에 따라 사업주가 하여야 할 ‘적절한 조치’에 관하여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을 예시로 들고 있으므로, 적절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정함에는 사업주가 어느 정도 재량권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피해 근로자의 의사 및 진단서 등에 나타난 소견은 가급적 존중될 필요가 있고, 원고가 피해 근로자로부터 수회에 걸쳐 유급휴가 요청을 받았음에도 그 요청을 거부하고 상병휴직만을 승인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4항에 따른 적절한 조치라고 보기 어렵고, 유급휴가 요청을 거부한 데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동조의 조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다. 또한, 원고의 의무 위반 행위로 피해 근로자에게 발생한 손해는 위 기간 동안 유급휴가를 부여받았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과 실제 수령한 임금의 차액이라고 할 것이다.


1. 사실관계

2019년 원고 회사에 입사하여 사무기술직으로 근무하던 참가인은 2022년 12월경 회사 임직원들로부터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신고하였고, 회사는 조사 결과 일부 성희롱 사실을 확인하여 관련자들에 대해 징계하였다. 신고 직후, 참가인은 재택근무와 단기 휴가(근무병행유학 유급휴가, 생리휴가)를 사용하였고, 이어 참가인의 요청에 따라 급여 전액이 지급되는 유급휴가(2022.12.15.~2023.1.31.)가 부여되었다. 그러나 참가인은 2023.1.20.자 원고의 인사 발령에 항의하며, 가해자와의 분리조치가 충분하지 않고, 성희롱 관련 조사 및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추가적인 유급휴가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2023.2.1. 부로 가해자 중 1인을 타 부서로 이동시킬 예정이므로 유급휴가는 종료하고 출근해달라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참가인은 ‘스트레스에 의한 급성 반응, 사유 : 직장 내 성희롱’이란 진단을 근거로 상병휴직을 신청하였고, 원고는 기본급 50%가 지급되는 상병휴직을 승인하였다. 이후 참가인은 2023년 2월, 4월, 7월에 걸쳐 진단서와 입원사실확인서 등을 제출하며 유급휴가를 계속 요청하였으나,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병휴직 연장과 무급상병휴직으로 처리하였다. 이에 참가인은 원고가 남녀고용평등법상 제14조 제4항에 다른 피해 근로자 보호조치를 적절하게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하였고,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이를 기각하였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참가인의 신청을 인용하여 회사가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회사는 재심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에서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자, 이에 불복한 참가인이 항소하였다.


2. 대상판결 내용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4항의 보호조치는 예시적 규정이므로, 피해 근로자가 유급휴가를 요청하더라도 사업주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적절한 조치를 선택할 재량이 있고, 다른 조치로 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반드시 유급휴가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1심과는 달리, 해당 판결에서는 해당 규정을 보다 엄격하게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에서는 피해 근로자가 진단서와 입원사실확인서 등을 제출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치료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소명한 이상, 사업주는 그 의사와 건강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여 유급휴가 요청을 가급적 존중해야 하고, 이를 거부하고 다른 조치로 대체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점은 사업주가 입증해야 한다고 보았다. 특히 참가인이 유급휴가 종료 이후에도 우울, 불안, 수면장애 등으로 정상적인 업무 복귀가 어려운 상태였고, 회사가 시행한 가해자 분리조치 역시 같은 건물 내 근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회사가 부여한 상병휴직은 업무 외 상병이나 정신상 장애를 전제로 하는 일반적인 휴직제도에 불과하고 기본급의 50%만 지급되거나 무급으로 이어질 수 있어, 피해 근로자 보호를 위한 특별 조치인 유급휴가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회사가 피해 근로자의 유급휴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병휴직으로 처리한 것은 피해 회복에 필요한 보호조치로서 적절하다고 볼 수 없고, 그로 인해 피해 근로자에게 발생한 임금 손실에 대해서도 유급휴가를 사용하였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전액을 기준으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3. 검 토

대상판결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 조치’를 사용자의 추상적 재량 문제로만 보지 않고, 피해 근로자의 회복 가능성과 의사에 비추어 판단해야 하는 실질적 의무로 해석하였다는 점이다. 원심의 판단이 ‘여러 보호 조치를 종합적으로 취했으니 충분하다’는 관점에 가까웠다면, 이번 대상판결은 ‘해당 조치가 피해 근로자에게 실질적으로 적절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심사하였고, 특히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우울, 불안, 불면, 대인기피 등 정신적 피해는 단순한 근무 장소 변경만으로 회복되기 어려우며, 회복을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과 경제적 안정이 함께 보장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결국 피해 근로자에게 임금 손실을 감수하도록 하는 방식의 보호조치는 형식상 조치에 그칠 수 있을 뿐,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4항이 예정한 ‘실질적 조치’로 평가되기는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피해 근로자가 객관적인 자료를 갖추어 유급휴가를 요청하였다면, 이를 거부할 합리적 이유는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피해 근로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과 사용자의 입증책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사업주의 시혜적 배려가 아닌 구체적인 법적 의무로 파악하는 태도로 볼 수 있으며,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사업주에게 보다 높은 설명 및 검토 의무를 부과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번 대상판결은 상병휴직과 성희롱 피해자 보호조치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는바, 상병휴직은 통상 근로자 개인의 질병이나 장애를 전제로 하는 제도인 반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근로자에 대한 유급휴가는 사업장 내 인격권 침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조치이다. 따라서 사용자가 성희롱 피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업무 수행 곤란을 일반적인 상병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피해자에게 임금 손실을 부담시키는 것은 본래 사업장 내 침해행위로 발생한 피해를 개인적 질병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은 피해 근로자에게 귀책사유 없는 임금 손실을 전가하는 방식은 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러한 판단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보호조치의 경제적 측면까지 고려 대상에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대상판결의 법리는 향후 실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는 피해자 보호조치의 형식만 갖추었다는 이유만으로 면책될 수 없고, 피해자의 의사와 건강 상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뒤 필요한 경우 유급휴가를 포함한 적극적 조치를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피해자가 진단서나 입원기록 등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며 회복을 위한 휴식을 요청하는 경우, 이를 거부하려면 사업장 운영상 중대한 곤란이나 대체수단의 실효성 등 합리적 사유를 사용자 스스로 입증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사용자의 재량적 배려가 아니라 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재정립한 사례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판결을 통해 피해 근로자가 유급휴가를 요청하는 경우, 사용자가 언제나 이를 승인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상판결 역시 사업주에게 일정한 재량이 있다는 점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재량이 피해자의 의사, 건강 상태, 사업장 사정 등을 종합하여 합리적으로 행사되었는지의 여부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쟁점은 모든 경우에 유급휴가를 부여해야 한다는 절대적 기준을 세우는 데 있다기보다, 어떤 경우에 다른 보호조치가 유급휴가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그 판단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어느 정도의 자료 확인과 설명이 필요한지 구체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대상판결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조치의 수준과 범위를 둘러싸고 형식적 조치의 존재만으로 충분성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피해자의 회복과 실질적 보호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정면으로 문제된 사안에서, 후자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즉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4항의 ’실질적 조치’ 의무를 피해자의 회복과 실질적 보호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보호조치에 관한 법 해석을 한층 진전시킨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